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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도 우리는 살아가야 한다 - <원피스>리뷰

by 로그진 2023. 11. 18.

 나는 대 투니버스 시대를 살았다. <이누야샤>, <명탐정 코난>, <슈가슈가 룬> 등 쟁쟁한 만화들 사이에서 내가 가장 즐겨봤던 건 단연코 <원피스>였다. 소년만화의 정점으로 불리는 <원피스>는 꿈과 희망, 낭만과 모험으로 똘똘 뭉친 나의 이상향이었다. 작중 루피에게 작고 큰 시련이 닥치는데, 그중에도 루피에게도, 나에게도 충격적인 기억으로 남는 건 형 에이스의 죽음이다. 

소년만화에서 누가 죽는다는 건 그만큼 충격적이었다.

  오늘은 에이스가 죽고 난 후 루피가 어떻게 형의 죽음을 극복하는가를 따라가며 이야기를 할 예정이다. 소년만화의 주인공인 만큼 어떤 문제가 있어도 꿈과 희망과 주먹으로 극복! 해 내는 루피가 자책하고 자해까지 했던 사건인 만큼, 어떻게 딛고 일어설까라는 궁금증이 인다. 

에이스는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행복하게 죽었지만, 죽음은 언제나 남는 이에게 더 고통스러운 법이다.
형의 죽음으로 정신이 없는 루피에게 준비할 시간도 없이 닥치는 현실.

  누군가 죽었다. 라는 건 참 신기하다. 죽은 이의 시간은 그대로 멈추고, 나의 시간도, 세상도 그와 함께 멈춰야 할 것 같은데 시간은 무심하게도 흐른다. 에이스는 죽었는데 전쟁은 계속된다. 받아들일 시간도, 틈도 주지 않고. 에이스는 이제 없다. 아니, 에이스의 흔적이 가득한 이 세상에 에이스만 없다. 이제 루피는 살아가야 한다. 에이스가 없는 세계를. 울어도 소용없고, 화내도 소용이 없다. 에이스가 죽었다는 충격, 구하지 못했다는 자책감, 방금 전까지 웃던 에이스를 눈앞에서 잃은 허망함과 함께 그저 무력하다. 

눈을 감아도, 눈을 떠도 그때의 그 기억이 생생하다.

  죽음 다음에 찾아오는 것은 쉴새없이 머릿속을 채우는 에이스의 기억. 작중 17세인 루피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버겁다. 전쟁 후 깨어난 루피는 에이스를 끊임없이 찾고, 화내고, 부순다. 그렇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다. 현실은 나를 불쌍히 여기지도 않고 그저 사실만을 말한다. 에이스는 죽어 버렸다고. 그게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차라리 잊어버렸으면 할 정도로 생생하게 그가 내 머릿속에 남아 있는데. 이제 없단다. 그게 사실이란다.

죽음을 받아들인 뒤 찾아오는 어마어마한 자책감은 해적왕의 꿈도 의심하게 만든다.

  형도 구하지 못한 주제에 무슨 해적왕이냐며 자책하는 루피. 약해빠져서 형을 그리 보낸 자신이 용서되지 않는다. 내가 더 강했더라면, 내가 조금만 빨랐더라면, 내가 그 때 멈추지 않았더라면, 에이스를 구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럼 에이스는 살았을 텐데. 팔다리 하나 날아가서 불구가 돼도, 어딘가 망가져도 이 세상에 나와 함께 있었을 텐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내 탓이다. 그게 나를 용서할 수 없게 만든다. 

  사실 에이스의 죽음은 에이스가 자초한(...)것이나 다름이 없다. 사카즈키의 도발에 넘어간 건 에이스니까. 그렇지만 눈앞에서 형이 죽은 루피에게 그런 생각이 들까. 나한테 원망을 돌리는 일이 가장 쉽고 처음 떠오르는 법. ~했더라면 이라는 생각은 멈추지도 않고 머릿속에서 계속 돈다. 에이스를 사랑했던 만큼. 

눈앞이 가로막힌 루피에게 징베는 이정표가 될 말을 (말 그대로) 귀에 쑤셔박는다.

  끊임없이 자해하는 루피에게 징베는 루피의 상태를 알려주며 앞으로 나아가라 얘기한다. 맞는 말이다. 죽은 이를 목도한 우리는 후회와 자책에 빠져 앞을 보지 못하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왜? 나는 이렇게 고통스럽고 에이스는 이제 없는데. 해적왕이고 뭐고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결국 루피를 구원하는 것은 혼자가 아니라는 안도감과 또 다른 소중한 이들. 루피에게 앞으로 나아가야 할 이유가 생겼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매몰차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우리에게는 사랑하는 다른 이들이 있다. 그렇기에 자책과 후회에 너무 깊게 빠져서는 안 된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하니까. 억누르라는 말이 아니다. 슬픔과 후회 또한 등에 지고, 앞으로 나아가라는 말이다. 나아가고 나아가다 보면 미칠 것 같던 슬픔도, 후회도 어느새 작아져 아문 흉터처럼 남게 된다. 그러니 살자. 루피도, 우리도.

잘 먹자. 살기 위해.

버텨내고 살아가다 보면 또다른 구원을 얻을지도 모른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고, 살아만 있다면 볕들 날은 반드시 온다. 신의 선물인 망각은 우리를 갈수록 덜 슬프게 하고, 언젠간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웃는 날이 올 것이다. 가끔 죽은 에이스 생각이 나면 루피는 울기도 하겠지만, 그래도 언젠간 웃으면서 담담히 에이스 이야기를 할 날이 올 것이다. 그러니까 나아가자, 결국 이겨내어 꿈을 향해 달리는 루피처럼. 

안녕, 에이스

 

아래는 개인적인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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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재미있게 쓰고 싶었는데 사진도 많고, 떠오르는 내용도 없어서 짧게짧게 쓴게 마음에 걸린다. 그 애가 보면 재밌다고 할까? 그래도 재밌다고 해줄 것이다. 역시 글 잘 쓴다고도 해 주겠지. 아니면 너무 감동적이어서 울었다고 하려나. 어쨌든 또 과격하게 리액션 해줄 것이다. 

나는 잘 살고 있다. 가끔 네 생각을 하면서. 

 

이 글을 너무 일찍 떠나버린 내 친구와 내 버팀목이 되어준 또 다른 친구에게 바친다. 

언젠가 다시 볼 수 있기를.